현관문 앞에서 굴러다니는 상장을 보았을 때, 어쩌면 그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내가 올라가고 있는 이 계단의 끝이 실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목표에 의구심이 든 순간 무력감이 온몸을 쓸어내렸고, 무엇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저 보지 못한 척했다. 상장은 꽤 오랫동안 신발장을 굴러다녔다. 어느 날에는 현관의 신발과 섞여 있고, 어느 날에는 신발장에 꽂혀 떨어질락 말락 했다. 하얀색 상장 뒷면엔 밟힌 신발 자국이 그려져 있었다. 그 상장이 내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 처음 받은 상장도 아니고, 그 상장이 막 중요한 것도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처음 그 상장을 받아온 날, 아빠는 상장이 금색이 아니란 이유로 나를 타박했다. 이런 것은 쳐주지 않는다고. 금색만 쳐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한 아빠는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쩌면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대회에 나가지 말 걸, 이라는 후회를 했던 것 같다. 너무 많은 상장을 집에 가져왔다. 금색의 상장이 흔했기 때문에 하얀 상장은 금세 밀려나 버렸다. 이제는 그 상장이 무슨 상장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흰색. 아마 은상. 금상에게 밀려난 은상을 떠올릴 뿐이다. 어차피 졸업과 함께 내 손으로 버려질 상장이었는데 뭐가 그리 중요했다고.

 

 처음부터 부모님이 내게 그런 기대를 품은 것은 아니었다. 온도계도 똑바로 읽을 줄 모르는 멍청이. 소심한 탓에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한참 딸린다는 평을 들은 게 나였다. 무서운 게 너무나 많았던 아이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어려웠다. 금세 틀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고, 틀리는 게 무서워 아무것도 적지 않는 날이 많았다. 어차피 그런 것들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작은 모니터 화면만이 그들의 전부였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는 온종일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게임을 했다. 날렵한 칼날 소리가 퍼트리는 컴퓨터를 보며 아빠를 원망했던 것 같다. 엄마가 하는 게임은 아빠가 시켜서 하는 게임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경험치를 올려야 한다고 아빠는 엄마가 게임 캐릭터를 죽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어쩌다 엄마의 캐릭터가 죽는 날에는 집안엔 욕설과 폭언이 난무했다. 작은 투룸. 작은 방은 거의 창고로 쓰고 있으니 사실상 원룸이나 다를 거 없는 집 아닌 방. 우리는 한 곳에 모여 각자 할 일을 했다. 퇴근한 아빠는 당연하단 듯이 컴퓨터 앞으로, 집안일을 다 끝낸 엄마 역시 아빠를 돕기 위해 컴퓨터 앞으로. 분명 가난한 집이었는데 우리 집엔 컴퓨터가 두 대나 있었다. 나란히 컴퓨터 게임을 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게 있어 아빠의 관심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빠의 시선이 내게 박히는 것만큼 불안한 게 없었다. 불안하지만 남의 비위를 맞출 줄 모르는 어린아이는 쉽게 맞게 될 뿐이다. 그러면 나는 살금살금 기어 다니는 게 맞았지만 꼴에 자존심이 센 탓에 그러지도 못했다. 나는 너무나도 쉽게 얻어터졌고, 또 모욕적인 말을 한껏 들은 뒤에나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니 아빠의 관심이 컴퓨터 게임에 박혀있는 것은 어쩌면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성적이 올라버렸다. 고학년이 된 탓에 학원에 보내진 탓이었다. 원래부터 멍청하다고 여겨진 머리는 사실 평범한 수준이었고, 무서운 게 많은 아이는 또 틀리는 게 무서워 외우는 건 곧잘 해냈다. 초등학교 애들이 조금만 공부해도 잘하듯이 내 성적은 금방 올라버렸고, 수학, 과학은 또 좋아해서 방학엔 중학교까지 가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즐거워질 줄 알았다. 이건 분명 좋은 일이니까. 내겐 잘 오지 않는 엄마의 시선이 또 좋아서 금세 웃어버렸으니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통화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내 이름이 껴있으니까. 그 말을 하는 엄마는 분명 즐거워 보였으니까. 내가 엄마의 즐거움이 될 수 있으면 그것도 내 행복이니까. 당연히 거기에 아빠의 기대가 올라올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올라버린 성적을 보며 아빠는 즐겁게 웃었다. 너도 하면 되는 애구나, 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는 분명 나 역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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