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 들리는 토악질 소리를 못 들은 게 아니에요. 나는 분명히 듣고 있었고, 가끔은 방 밖으로 나와 엄마의 등을 토닥이기도 했죠. 엄마, 너무 많은 사람이 주변에서 울면 눈물도 안 나오는 법이래요. 그러니 내가 울지 않은 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집에 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나까지 울겠어요. 내가 슬프지 않았냐고 하면 사실 모르겠어요. 매일같이 이어지는 일인데 어떻게 매일 슬퍼하겠어요. 그냥 늘 있는 일상처럼 받아들일 뿐이죠. 그러니까 엄마, 나는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요. 엄마 말대로 내가 징그럽게 냉정한 애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 집에서 살지 못했을걸요.

 아마 다행이지 않을까요? 그 탓에 나는 조금이라도 엄마를 덜 원망하게 되었잖아요. 나는 그게 우리 집 규칙인 줄 알았어요. 누군가 울고 있으면 모른 척하라. 마치 가풍처럼 있는 것이라 여겼죠. 그러니 엄마도 제가 바닥을 기고 있을 때 모른 척 눈을 돌린 것 아니겠어요. 엄마 나는 그걸로 엄마를 원망하지 않아요. 기대를 버렸고, 혹시 모를 희망도 버렸으니까 다행히 엄마에 대한 사랑은 지켜졌죠. 감정의 일부분을 버리면 다른 소중한 감정은 지킬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 일이겠어요. 차라리 내가 냉정한 애라서 엄마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나는 그래서 이게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엄마 생각은 달랐을 수도 있죠. 내가 울던 날 엄마는 내가 맞는 걸 지켜보았지만 나는 스트레스에 구역질하는 엄마의 등을 붙잡고 울었어야 했나 봐요.

 하지만 엄마, 나는 감정이 싫어요. 우는 것도 싫고, 웃는 것도 싫고, 기쁜 것도 싫고, 슬픈 것도 죄다 싫어요. 그냥 메마른 바위처럼 내 자리를 지키고 싶은 게 내 욕심이고 바램이에요. 하지만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내가 울면 뭐가 달라질까요? 나를 향한 매질만 심해질 뿐이죠. 내가 웃으면 뭐가 달라질까요? 당장은 뭐가 나아지겠지만 내 속은 점점 죽어가겠죠. 기쁨은 잠시고 상실은 너무 크게 내 몸에 남아버려요. 무엇보다 엄마, 내가 엄마한테 느껴서는 안 되는 감정들마저 갖게 되는 거 아닐까요? 나는 엄마를 미워할 수 없어요. 그러면 나는 도대체 누굴 사랑하고 누구에게 애정을 표현해야 하는 걸까요? 엄마, 그렇게 되면 내 옆에 있어 줄 것도 아니잖아요.

 혹시 모르죠. 엄마는 착한 사람이니까 내가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더라도 나를 사랑해줄 수도 있죠. 그저 엄마를 믿지 못한 내 잘못일지도 모르죠. 역시 의문은 의문일 뿐이죠. 뒤늦게 돼서야 알았잖아요. 착한 사람은 모두의 편은 되어도 내 편은 되어주질 못한다는 사실을요. 나를 사랑할 수 있죠. 아빠도 사랑할 수 있죠. 근데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이 맞아도 아무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패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나요? 엄마의 사랑이 너무 크고 벅차서 나는 때로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내가 맞고 싶지 않아서 아빠한테 대들어도 엄마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늘 아빠 편이었죠. 엄마 말이 맞아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선 내가 침묵하고 아빠의 말을 따르는 게 옳죠. 내 몸에 온통 멍 자국으로 도배된 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나약하고 안쓰러운 우리 엄마. 나는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내 감정마저 내게 짐이 될 것이라고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내게 상처가 되겠다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엄마?

 역시 엄마 말이 맞나봐요. 나는 냉정한 애로 살아가는 게 인생에 좀 더 맞는 거 같아요. 그러니 더 이상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래요. 내 감정이 내게 짐이 된다면 버려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엄마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래요. 가뜩이나 사는 것도 힘든데 슬픔이나 원망 하나하나 느끼다 보면 내가 지쳐서 어떻게 살겠어요? 나는 이제 엄마 같은 사람은 만나지 않을래요. 나는 역시 착한 사람이 싫어요. 착한 사람은 내 편이 되어주질 못하잖아요. 영원히 그렇게 나약하고 싸우는 게 무서워 모두를 위하는 척 살라고 해요. 그럼 이제 상처받을 일은 없겠죠. 더 이상의 상실도 외로움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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