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날 좋아하지. 잘 알고 있어. 호의로 가득 찬 너의 표정을 보고 있자면 나는 아주 조금씩 시선을 내린다. 내려간 시선이 바닥을 향해있을 때면 잠시 생각하는 척 눈알을 굴리다 이내 너를 바라본다. 너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더라. 그런 것은 기억나질 않는다. 애초에 중요하지 않으니까. 너는 나를 보고 웃고, 나는 너를 보고 웃는다. 그러면 끝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완벽한 결말을 향해 나가는 우리의 관계. 너는 누구였더라. 너였고, 너희였고, 씹새끼들이었고. 과거 속에서 죽어버렸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었지. 안타깝게도 너는 살아있다. 숨을 쉬고 있고, 표정을 짓고 있고, 나를 보고 있다. 나를 보는 너의 눈동자 속에서 살아있는 나를 저주한다.

 네가 그때 뭐라고 말했더라. 나를 동경한다고 말했지. 나의 언어와 나의 행동과 나의 글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너를 보면 나는 아주 잠시 숨을 참았다. 네가 좋아했던 것은 나의 웃음이었을까, 나의 우울이었을까, 내가 겪은 불행이었을까, 내가 가진 즐거운 생활이었을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너는 나를 좋아했고, 나는 갑자기 주어진 호의에 웃음으로 대충 때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친구가 되어있고, 정신 차려보면 너는 나를 소비하고 있지. 내 말이 틀려?

 나는 블로그의 카테고리 같은 존재였다. 카테고리 속엔 여러 가지의 감정이 담겨있고, 너희는 그중 내 일부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나를 아주 조용히 관찰한다.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훑어보는 시선을 나는 모른 척하며 너희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시늉을 한다. 시늉을 한다. 시늉을 한다. 시늉을 한다. 시늉을 한다. 씨발 내가 어디에 있었더라.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치

 나 없었나?

 다시 시작하자. 네가 나를 본다. 나에 대해 말하며 잘못된 나에 대해 나열하기 시작한다. 그 속에 있는 나는 행복했고 웃음이 많았으며 대가리가 꽃밭이었다. 너는 나를 뭐로 보고 있니. 아, 당연히 너의 이상향으로 보고 있겠지. 나는 늘 누군가의 이상향이 된다. 당연하단 듯이 무대에 끌려가 누군가의 환상이 되어준다. 자, 어때 이만하면 괜찮을까? 면접을 보는 사람처럼 애써 면접관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톤을 유지해야 한다. 나는 의식해선 안 돼. 나는 너를 보아선 안 돼. 왜냐면 나는 네가 되어야 하는 무언가니까.

 알고 있어. 나는 꽤 멋있는 사람이지. 힘든 상황임에도 웃고 있고, 시련 앞에서도 늘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굳건하게 서 있지. 독하지. 집념으로 가득 차 있지. 악으로 버티고 있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티를 내서는 안 된다. 그게 올바른 행동이니까. 그래야 너의 이상향의 무언가가 될 수 있겠지. 내겐 의무가 있다. 사람들의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래서 엄마는 그렇게 내게 주술처럼 말했던 게 아닐까. 원하는 딸의 이미지를 그렇게 내게 주입했던 게 아닐까. 내 어깨를 쥔 손엔 늘 힘이 들어가 있었다. 너는 강해져야 해. 네가 밝은 아이라 다행이야. 네가 굳건한 아이라서 엄마는 마음을 놓을 수 있어. 맞는 말이다. 내가 그런 아이라서 엄마는 내게 의지할 수 있었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래, 나는 그런 사람으로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너도 내게 비슷하게 말한 것 아닐까. 내 손을 쥔 너는 틈만 나면 내게 말하곤 했다. 부러워. 나도 너처럼 강해지고 싶어. 나도 너처럼 당당해지고 싶어. 너는 불행 따위는 없는 사람인 것 같아. 미끄럼틀을 끝자락에 앉아 흘러 내려가는 아이스크림 바를 핥으며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나를 마주 본 채 웃으며 말한다. 너는 좋은 집에서 태어났을 것 같아. 그러니까 내 아픔 따위는 모를 거야. 부러워, 네가.

 부럽대. 나도 이제는 모르겠다. 나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 필요 없는 고민일 거야.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리는 동떨어진 채 서로를 보고 있다. 내 어깨를 쥔 손을 보며, 내 손을 쥔 손을 보며, 끝내 내 아이스크림 바를 가져간 손을 보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사이가 뭐라고, 그치? 우리는 그 어떤 사이도 될 수 없다. 그 어떠한 실로도 우리를 묶을 수 없다. 네가 내게 대본을 쥐여주었고, 그럼 나는 네게 있어 줄 달린 하나의 인형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네게 고마움을 느낀다. 정말로 고마운걸? 농담이 아니야.

 내겐 어떠한 부담도 없다. 움직이는 인형한테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인형은 그냥 마음에 들면 끝이다. 그러니 나도 끝이다. 네게 있어 나는 끝자락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을 것이다. 양극단의 끝에서 서로를 바라본 채 마임을 하듯이 손만 움직일 뿐 절대로 다리를 움직이지 않으니까. 내게 있어 너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대본을 쥐여준 면접관이었을까, 실을 쥔 주인이었을까. 그건 아니었지. 우리는 거래를 하고 있을 뿐이잖아. 다소 내게 불공평한 거래긴 하지만 나는 그 무엇도 네게 내주고 싶지 않다. 그래도 고마워. 나는 덕분에 너를 기만할 수는 있게 되었잖아. 충분히 즐거워. 우리는 좋은 거래 상대가 될 수 있잖아.

 나는 춤을 추고, 너는 춤을 추는 나를 보고.

 나는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너를 보고, 너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춤을 추는 나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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