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짱이의 집에서 가장 생소했던 것은 단연 음악이었다. 음악은 항상 나와 먼 곳에 있었다. 워낙 문외한인 것도 있으나 ‘소리’는 나한테 있어 일종의 소음과 같았다. 돌아가는 LP판을 보고 있다니 얼마 전에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대부분의 90년대생 아이들의 집엔 전축이 있었다고. LP도 CD도 테이프도 재생되는 전축은 IMF 이전의 중산층이 가장 많았던 시절,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유복함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물건이었다고 했다. 다들 집에 하나쯤 있지 않았나. 괜히 자리만 차지하고 집안 누구도 쓰지 않았잖아. 모두가 공감하며 웃는 그 가운데 홀로 고민에 빠졌다. 유년 시절에 소리를 내는 물건이라고는 TV와 컴퓨터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컴퓨터는 부모님이 게임을 하느라 바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투니버스를 트는 것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컴퓨터 의자에 나는 그 옆인 텔레비전 앞 바닥에. 휙휙 거리는 게임 속 칼날 소리와 시끌벅적한 애니메이션 소리가 집안을 채우곤 했다. 실은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내가 텔레비전 외 소리를 내면 부모님은 싫어했고, 온종일 말을 거는 날에는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하루는 혼이 났고, 하루는 결국 맞았고, 어느 날엔 유리컵이 날라왔다. 어느 순간부터 적막으로 가득한 날이 좋았다. 게임 소리도 텔레비전 소리도 결국 듣고 싶지 않았다.

 

 소리는 곧 사건의 전조였다. 수많은 전조를 눈앞에 앞두는 것 또한 무섭지만 놓치는 게 더 끔찍했기에 어느새 집안 곳곳에 떨어진 전조를 하나하나 줍게 되었다. 소리를 모으고 모으다 보면 알고 싶지 않은 비밀들을 줍곤 했다. 그날 얻게 된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랬다. 이어지는 도돌이표에 지쳐 아무것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날도 있었으나 또다시 전조들을 잔뜩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조차 없이 사건을 맞이하는 날엔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할 테니 예상이라도 할 수 있는 편이 나았다. 납득할 수 없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스스로 어떻게든 납득시키기 위해 찾은 답안은 결국 문제의 원인을 내게로 돌리는 거였다. 정말 나 때문이었을까. 반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전조가 필요했다. 그날은 아빠가 화가 난 날이었구나, 그날도 아빠가 화가 날이었구나, 그날도 아빠가 화가 난 날이었군.

 

 어느 순간부터 소리를 듣지 않는 일이 휴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적막한 밤이 나았다. 혼자인 게 안전했다. 무음이 곧 안전이 되어버린 집이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남들이 보는 경계선과 내가 보는 경계선이 다른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는 타인의 시선을 볼 수 없으므로 영원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미지가 무서워 나는 또 시선을 돌렸다. 턴테이블의 바늘과 칠판을 긁는 손톱의 경계를 이따금 묻고 싶을 때가 많았다. 수많은 말들이 기도에 막혀 다시 들어가 버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소리의 경계를 다른 사람들이 듣고 즐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어쩐지 고장이 나버린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턴테이블에선 누군가의 목소리와 낮은 멜로디가 계속 흘러나왔다. 애인은 여유를 즐기는 듯한 표정으로 이 LP, 저 LP를 살펴보다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알고 있다. 더 이상 위협을 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더 이상 전조들을 모으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그 어떤 소리도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경직된 채 긴장을 풀지 못했고, 나른하게 누워 코까지 골면서 자는 애인을 보자 뭔가 허무해졌다. 숙소에서는 어디를 가던 아로마 향이 났다. 물건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벽은 유년기의 집과 달리 담배 때 없이 하얗기만 했다. 예전과 달랐다. 나는 침대에 누워 머리맡에 있는 시디플레이어를 틀었다. 가사 없는 맬로디가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허무한 감정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맞아. 많은 것들이 예전과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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