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동경해왔던가? 사실 시야에도 잘 들어오지 않은 문제였다. 당장의 현재만 보는 내가 타인의 여유를 동경하거나 시기하기엔, 그래, 인생이 너무 바빴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다 엎어져서 쉬다가 다시 달리는 것의 반복이었다. 쉬어도 무기력으로 점철된 휴식이었지 여유라고 부르기엔 솔직히 어려운 면이 강했다. 나는 여유가 뭔지 모르겠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이번엔 어떤 계획도 세우지 말고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가만히 있는 시간은 늘 불안하기만 하고, 여유를 즐기는 것도 나는 잘 모르겠지만 굳은 네 표정을 보고 있자니 네 말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별로 없는 돈을 모아 꽤 비싼 숙소를 잡아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우리가 들어온 숙소는 여유를 공간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모습이다 싶은 정도로 아늑하고 편안했다. 방 하나하나가 깨끗했고, 사소한 디자인마저 신경 쓴 티가 묻어 나왔다. LP판과 커다랗고 예쁜 책장, 선반에 놓인 핸드드립 커피. 시간을 즐기며 여유가 무엇인지 알고, 자신의 취향이 확고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물품들이었다.

 

 우리는 한참 말장난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노을이 커튼 사이로 길게 내려왔을 때, 몸을 일으켰다. 2분이면 탈 수 있는 믹스커피 대신 수동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여과지에 물을 내리는 15분여의 고생을 거쳐 핸드드립 커피를 완성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퍼진 원두 향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시간의 흐름, 느릿한 움직임, 서서히 퍼지는 향, 손안에 쥐어진 뜨끈한 커피잔. 평화로움 가득했다. 나는 멍하니 앉아 커피를 내리며 음악을 바꾸는 너의 모습을 지켜보았고, 너는 들뜬 모습으로 내게 이 원두가 어떤 원두인지 설명하느라 바빴다.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그저 신난 너의 모습이 어쩐지 신기해 보여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우리는 커피를 다 내린 뒤 소파에 누워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아늑한 조명과 따뜻한 바닥, 푹신한 소파보다 좋았던 것은 다름 아닌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었다.

 

 책에서 눈을 돌려 너를 보고 있자면 그 공간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너는 그랬다. 소비를 즐길 줄 알고, 취향이 명확하며 무언가를 조급해하기보다는 일상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의 표본과 같아 보였다. 말하자면 우리는 딱 개미와 베짱이. 정해진 일만 하는 개미와 불이 붙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 베짱이. 개미가 베짱이의 집에 간다면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다. 그날 나는 베짱이의 집에 놀러 온 손님이었다.

 

 실은 베짱이인 네가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미의 관점으로 베짱이를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너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개미에게 중요한 것은 안전한 집과 미래에 대한 보장이었다. 강장의 오늘을 즐기기 보다는 내일의 안정을, 몸의 회복보다는 다음 날의 일에 더 관심이 쏠려있었다. 그런데 들뜬 모습으로 조잘거리는 너를 보자 기분이 이상했다. 어쩌면 그게 너의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단지 개미가 좋아서 개미의 집에 사는 베짱이가 아니었을까. 단지 현실적인 능력이 없었을 뿐, 그렇게 과소평가가 될만한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한량이지만 문화적 방면에선 상당히 잡학다식했고, 너는 고급 취미를 맛볼 줄 알았으며 자신의 로망으로 집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돈도 써본 사람이 써본다고, 나였으면 상상도 못 했을 노래방이나 빔프로젝터 따위 것들을 너는 떡하니 집에 저질러놓았다. 나와는 다른 모습. 개미는 이해하지 못하는 베짱이의 모습.

 

 우리의 차이에 대해 생각한다. 어린 나와 어린 너의 간격이 어디서 벌어졌는지를 상상해본다. 아무래도 집에 대한 안정성과 태도에서 나왔겠지. 내게는 쉽게 떠날 집. 이사 가면 버려야 할 물건들, 없어도 된다면 굳이 품지 않는 로망. 심지어 그 로망을 채우는 과정마저 내게는 철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절박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고, 숨이 막혀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그런 내게 너는 너무나 어려운 존재였다. 개미에겐 어려워. 베짱이에겐 베짱이의 집이 어울렸고, 개미에게 베짱이의 집은 어쩌다 겪는 일탈로 충분했다. 마치 오늘처럼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여유를 모르는 내가 너무 불쌍해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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