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편으로 돌아와서, 다시 인사.

 

  지금까지 나는 ‘피아노를 치는 나’만 가치가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내가 원하던 모습은 ‘피아노로 성공한 나’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피아노로 성공한다’라는 것 자체도 하나의 스펙트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좋았을 것 같다. 가령, 국제 콩쿠르에 나가서 상을 타 저명한 음반사와 녹음을 하고, 사인회를 열 정도로 유명해지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학을 다녀와 다시 한국에서 교수로 임용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피아노 학원을 차려 유수한 제자를 길러내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성공의 기준은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옛날에 나는 좋은 학부를 나와서 유학을 다녀오고 한국에 돌아와 임용하는 것만이 성공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현역 때 한 번 넘어지고, 반수 실패 때 또 한 번 넘어진 것 같다. 그래서 회사에 간 것도 사실은 일정 부분 도망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피아노로 성공하지 못하는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소속감과 명예, 돈을 번 건 일탈이었다고. 이건 진짜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피아노 위에서 달려야 했다. 경주마같이.

  악보를 찢을 수 있었던 건 그다음, 2차 병원을 제외한 두 번째 입원 때였다.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하고 살 것이냐는 주치의의 말에, 피아노를 굳이 할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계속한다면 그건 아마 학기를 마쳐야 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피아노만이 성공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회사 일도, 대외활동도, 글도 연재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더라고요.”

  “피아노 안에 내 가능성을 가두고 싶지 않아졌어요.”

  좋아하는 기억을 언젠가 꺼내 다시 펼쳐볼 수 있는 것처럼, 피아노도 언젠가 내가 원할 때 칠 수 있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내 안에서 악보가 찢어졌다. 더 이상 피아노로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로움, 피아노만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개운함. 내 인생은 오선보에 갇혀있는 음표 같은 것이 아니었음을 너무나 늦게도 깨달았다.

 

  베토벤의 23번 소나타의 별명은 열정 소나타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23살이고 올해는 내 인생에 있어 제일 열정 넘치고 또 넘치는 열정만큼 다치기도 했던 해였다. 운명처럼 찾아와 나에게 가능성을 한껏 열어준 해. 어떠한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모르겠는 내 인생 소나타는 이렇게 악보를 찢는 걸로 막을 내렸다.

  피아노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았다고 이야기하기까지 정말 멀리 돌아왔다. 여운에 젖어 누군가 커튼콜처럼 다시 이 글을 찾아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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