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의 밤은 어둡다. 반짝이는 것은 전부 바깥에 있다. 시끄럽게 반짝거리는 풍경을 보다 보면 나도 저기에 끼어들고 싶다. 나만 여기에 이렇게 갇혀 있는 건 싫어, 약을 먹고 몽롱한 내가 외친다. 왜 나만 빼고 재밌는 거야? 어서 빨리 내일 아침이 되었으면. 그래서 6시에 기상하는 채현이와 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외로우면 잠들지 못하는 나는 항상 창문을 보다 약 기운에 취해 잠들었다. 근데 잠 좀 늦게 잘 수 있지. 나는 혼자서 외로움을 느끼면 충동 조절 문제에 시달렸다. 그래서 잠 늦게 자는 나에겐 특히나 위험한 일이었다. 주치의도 이를 알고는 바로 잠들 수 있도록 약제를 조절했다.

  회진에서도, 면담 치료에서도, 퇴원 후에 제일 걱정되는 것이 뭐냐는 물음에 한결같이 ‘밖에 나가서 제가 충동 조절을 못 할까 봐 걱정돼요.’라고 답했다. 사실 이건 내가 ‘나’를 믿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로 두 달 동안 퇴원을 유예하고 있었다. 그 두 달 동안 친구들을 사귀었다가 헤어지길 반복했다. 점점 인간관계에 둔감해졌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떠나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그 흔한 말을 하게 되었다. 그냥 관계도 물 흐르듯이 흐르는 것이었다. 언제는 관계가 닫히기도, 닫혔던 관계가 열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떠난다고 충동에 휩싸이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혼자 있다는 감각을 버텨내는 것이 숙제였다.

 

  그때 신문사에 있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M사, 에세이 공모전 개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적는 에세이 대회였다. 나는 애인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 이 공모전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몇 회인지, 작년도에 접수된 작품은 몇 개인지 등등. 더 필요한 정보는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이거 제가 그냥은 못 뽑아드리고 주치의 선생님 허락이 필요하대요. 죄송해요.”

  도대체 공모전 정보를 보는 데에 왜 주치의 허락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병원에선 주치의의 말이 절대적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주치의가 과연 허락해줄지 아닐지를 가늠하고 있을 때 주치의가 나타났다.

  “아, 여기 계셨네요. 공모전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어서요.”

  주치의는 별걸 물어보지 않았다. 단지 내가 공모전에 나가서 무엇을 하려는 건지,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지를 염려했다. 염려는 염려로 두고, 공모전 안내문 출력을 허락받은 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공모전과 수상 작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병동에서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전자기기 반입이 되지 않는 그곳에서 손으로 6천 자 가까이 써내는 기행을 보였다. 밤에 외로워 잠 못 들던 나는 어디로 가고 어느새 글쓰기에 골몰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외로워 충동에 휩싸이는 일도 잦아들었다.

  글쓰기는 ‘나’에게 집중하는 방법이었다.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나’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일기는 꾸준히 써왔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쓴 것은 이때부터였다. 다듬는 과정까지 혼자 하면서 나의 취향을 알아가고 자존감을 기르며 자기 확신을 키워갔다. 혼자 살면서도 충동 조절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나는 글쓰기를 하면서 키웠다. 과거의 상처를 더 이상 반추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글로 승화한다는 점에서도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데에 글쓰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8주간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하게 된다.

 

  퇴원하고 당장은, 솔직히 무서웠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뭐부터 써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손을 키보드에 올렸다가 다시 내리길 반복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건, 병원에서 썼던 글들을 퇴고하는 것이었다. 퇴고하며 글 보는 눈을 다시 키울 수 있었다.

  “지금의 문제는 길게 봐야 하는 속성의 것이기도 해서,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처음 마주한 교수님의 이 한마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약간 급한 감이 없지 않게 퇴원했지만, 지금은 잘 적응해서 지내고 있다.

  ‘밖에 나가서 제가 충동 조절을 못 할까 봐 걱정돼요.’라는 나의 말과 달리 아직까진 충동 조절을 잘하고 있다. 공모전에 제출할 글도 완성하게 되었으며, 완성의 경험은 하나, 둘 블록처럼 쌓여 나의 든든한 성벽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쌓인 블록들이 언제 또 무너져 내릴지는 잘 모르겠다. 공든 탑이어도 무너지는 경우는 왕왕 있었으니까.

  그럴 때 교수님이 해준 말이 있다. 인생은 터널과 같다고. 곧게 뻗은 터널은 쉽게 끝이 보이지만, 굽은 길은 끝도 안 보이고 그저 어둡기만 하다고. 그럴 때 옆에 있어 주라고 있는 게 치료진이니, 치료진과 함께 터널을 지나다 보면 차츰 터널이 무섭지 않게 될 것이고, 혼자서 터널을 지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된다고 하셨다. 그 말에서 내 인생에 터널이 몇 개일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넘어지는 게 아니라 그저 터널을 마주할 뿐인 거로 생각하니, 조금은 안심됐다.

 

  내 글도 그런 글이 되었으면 한다. 터널을 걷는 당신의 손전등 같은 글이었으면 좋겠다. 정신병에 대한 인식이 요즘은 차츰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변인에게 알리기 꺼려지는 질병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고, 당신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여기 또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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