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동의 사람들이 주로 마음이 여려 온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서로 배려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건 아니다. 병동의 분위기는 환우가 바뀌면서 같이 바뀐다. 그래서 같은 곳에서 입원을 해봤다고 해도, 선생님들이 모두 나를 기억해준다고 해도 적응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이번 입원 때 처음에는 눈치를 살폈다. 2차 병원과 달리 조용하고, 큰 사건 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이미 무리가 지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실 누군가랑 친해지고 싶지도 않았지만, 할 것 없는 이 병동에서 친한 사람 하나쯤 있는 게 나았다.

  다행히도 그런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왜 왔는지, 자신은 뭐 때문에 왔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얘기가 너무 길어져 피곤하다고 생각할 때쯤, 나는 잠시 일기를 써야 한다며 자리를 비켰다. 이미 무리가 있어 보이는 그 사람은 참 친화력이 좋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어떡하지? 저분은 나랑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나 봐….”

  “나는 인기녀가 아니었던 걸까?”

  밖에 있는 무리를 의식하고 있던 차에 나 보고 하는 소리인가 싶어서 고개를 들었다. 병실 밖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있던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아, 나한테 한 말이었구나. 하루 만에 오갈 수 있는 대화는 다 한 것 같은데, 왜 그런 오해를 하는 걸까 의문이었다. 내가 뭔가 불친절했나?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초면에 내가 친절한 편은 아니니까.

 

  병실에는 그 사람과 채현, 보라, 나까지 네 명 있었다. 우연인지, 채현과 보라, 나는 H사의 아몬드를 하나씩 들고 있었고 그걸 계기로 서로 친해지게 되었다. 채현은 허니 버터, 보라는 와사비, 나는 체리 주빌레를 들고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바빴다.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그 사람은 어느덧 우리에게 다가와 어느 맛 아몬드가 제일 맛있냐며 묻기도 했다. 병실 이름표에 스티커를 하나씩 붙이고, 채현은 우리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그려 병실 문에 붙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날, 회진을 왔다. 우리는 노느라 병실을 비우고 있었고, 병실에는 그 사람만 있었는데 나중에 채현이 와서 말해줬다.

  “수 선생님이 우리 그림 떼래.”

  왜냐는 질문에 그 사람이 울면서 말했다고 했다. 채현과 보라,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따돌리고 있다고. 그 말을 듣고 나를 포함한 채현과 보라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대화에서 배제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오기 전부터 무리가 있던 그 사람을 굳이 챙겨야 한다고도 생각하지도 않았고. 게다가 그때의 우리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고, 그저 아몬드가 시리즈로 있는 게 웃겼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병실을 옮긴다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붙잡고 싶지도 않았고.

 

 

  “아니 네가 여기 앉아보라고 씨발!”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그 사람의 병실에서 큰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눈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분과 블라인드 내리는 문제로 싸움이 난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들어선 안 될 얘기를 듣게 되었다.

  “쟤네가 따돌려서 왔다며! 왜 날 괴롭히는데!”

  그 사람은 저기 가서도 우리가 따돌렸다고 말한 것이었다. 다시 억울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병동에서 일진 같은 걸로 낙인찍혀 있을 것만 같았다. 선생님들도 우리를 안 좋게 보고 있는 거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꼭 치료가 안 될 것만 같고,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면담 요청을 했다. 면담실에 들어가면서 내내 긴장했다. 회진 때 주치의 선생님도 계셨던 것 같은데 나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고 계시면 어떡하지? 그 속마음은 그대로 입 밖을 나왔다.

  “혼날 것 같아요.”

  주치의 선생님은 잠깐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곧이어 이유를 물었다.

  “제가 잘못한 게 있어서요….”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누군가를 싫어해 본 경험이 있냐는 물음에 싫어해 본 적이 있으면서 내가 싫어하는 상대가 되어본 적도 있다고 답했다. 그게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저를 싫어했는데, 싫어할 이유가 있었겠죠. 아니지, 싫어할 이유가 세상에 어딨나요?”

  “맞아요,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는 없어요. 다만 상대에게 요인이 있었을 거예요.”

  요인. 나는 어떤 요인으로 그 사람을 싫어하는 거였을까? 할머니 얘기를 하다 문득 그 사람이 생각이 났다. 나는 아직도 어떤 요인이 건드려진 것인지 잘 모른다. 그 사람은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지만, 그래서 몸살 같은 신체화 증상에 시달렸지만, 그 일이 내 입원에 있어 중요한 일은 아니었기에 그 사람의 일은 심도 있게 다뤄지진 않았다.

  인제 와서 생각해보건대, 그 사람은 내가 반박할 여지 없이 내 얘기를 하고 다녔기에 스트레스가 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나에 대해 말한다는 것 자체가 내 반박을 차단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나를 싫어한 할머니가 하던 행동과 같아서, 거기서 오는 무력감마저 닮아 있어 크게 아파했던 것 같다. 이런 사람과는 어떻게 같이 살아야 하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고, 배워가는 중이다. 그저 상대가 나에게 칼을 겨눈다고만, 내가 상대에게 칼을 겨눠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칼 피하기 바쁘지만 언젠가는 내 칼끝이 스스로나 상대가 아닌 좀 더 지혜로운 방향으로 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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