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네가 불쌍하지 않아? 라고 묻는다면, 불쌍하지 않았다. 나는 좀 고생해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인생은 힘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고 내가 무언가를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나는 고생 좀 해도 됐다. 고생을 한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물론, 죽고 싶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지 않은가. 죽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더구나 죽는데 실패하면 너무 많은 불행을 떠안게 된다. 죽지도 못한다면,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나는 최선을 다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쉬어야 한다는 이유도 모른 채 스스로 그렇게 되뇌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겼다. 다들 자기가 제일 가여웠고, 자기가 가장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울고 있는데 나까지 울 필요는 없다. 모두가 힘들다고 말하는 와중에 나까지 힘들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어느 새부터 침묵을 지키는 일이 익숙해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십 대 초반엔 스스로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가끔씩 했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으나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점점 그런 마음이 퇴색되어 갔다. 불쌍히 여겨봤자 좋을 게 없었다. 나는 일을 해야 했고, 당장의 위기를 해결해야 했고, 어떻게든 정답으로 상황을 이끌어야 했다. 거기에 애인은 그렇게 말했다. 너는 책임감이 너무 강해.

 

 어째서. 다들 이렇게 사는 거 아니야? 의문은 많았지만 뭐 하나 묻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또 웃음으로 넘겼다. 역시 균형은 어려웠다. 책임과 마음, 일과 휴식. 그런 것들은 내게 어려운 것들이었다. 나는 명확한 게 좋았고, 모 아님 도로 달리는 게 잘 맞았다. 그런 내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고는 있다. 너를 불쌍하게 여겨. 그 어린애가 아르바이트 몇 개씩 하고, 열 오른 머리 붙잡고 공부하는 게 불쌍하지 않아? 나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그래야 내가 살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마음은 너무 쉽게 무너져 버려서 당연하게 만들지 않으면 금세 또 휘청거렸다. 그러니까 내 세계에선 당연해야 했다. 스스로 세뇌하듯이 살았다. 시야를 좁게 만들어야 뛰는 게 편했다. 그래야 다른 생각을 안 하고 살 수 있으니. 그렇게 나는 경주마처럼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알고 있잖아. 인생에 골인지점은 없고, 있다고 쳐도 아주 멀리 있다는 걸.

 

 아, 너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모든 게 명확했으면 좋겠어. 내 감정과 별개로 해야 하는 것이 명확해서 나는 그거만 했으면 좋겠어. 몸이 부서져 가는 것을 차라리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안 좋은 조건이라면 더 노력해야 하는데 마음까지 챙기면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버틸까. 숨은 계속 끝없이 나오는데 들이키는 것은 이상하게 힘들었다. 내쉬는 숨은 끊임없이 내 몸속에서 빠져나왔고, 들어오는 숨은 나를 외면한 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멈추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닐까.

 

 하루가 서서히 무너지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해오지 않았는가. 더 이상 그런 경험을 겪고 싶지 않았다. 번아웃의 굴레를 끊어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나의 하루를 사랑했다. 그런 하루를 또 한 번 망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내가 무너질 때마다 휘청거리는 애인의 모습을 더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를 지켜야 해. 나를 지켜야 하루를 지킬 수 있어. 그럼 나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갑자기 마주한 나에 대한 보호는 너무나 낯선 것이었고, 무지함으로 뒤덮인 것이었다.

 

  나는 어떨 때 즐거움 느꼈던가. 어떨 때 쉬는 거 같다고 생각했더라. 잘 기억나지 않은 옛날을 더듬거리며 내려갔다. 그 끝에는 행복이 아닌 내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번엔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그만두었다. 노력을 그만두는 것은 어쩐지 내게 힘들고 어색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힘을 빼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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