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나는 코로나 음성 판정받았고 입원 수속은 바로 진행되었다. 8층으로 올라가니 보이는 익숙한 복도. 81병동 입구였다. 간호사 선생님이 이것저것 설명해주시고는 바로 환의로 갈아입었다. 이유도 없이 툴툴대던 작년 입원과는 달리 이번에는 심란할 엄마를 꼭 껴안아 주고 들어왔다. 입원해서는 바로 적응했다. 적응이랄 것도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과 보호사 선생님 모두 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고, 선생님들도 전부 나를 기억해줬다. 병실로 들어가기 전 안정실에서 보호사 선생님이 왜 다시 들어왔냐고 물었다.

 “그러게요, 선생님. 저 왜 다시 들어왔을까요?”

 “…. 사실은요, 친구들이랑 멀어졌어요.”

눈물이 났다. 서울살이 포기하는 게 뭐라고, 친구들이랑 멀어지는 게 다 뭐라고 이렇게 힘든지.

 

 내가 힘들어한 건 친구들과의 이별뿐만이 아니었다. 정든 이라면 누구든 헤어짐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병동에서 종종 작년에 보던 전공의 선생님들을 봤다. 면담을 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이름을 다 외우고 있어 항상 내가 인사를 건넸다. 그중에서 가장 반가운 사람은 역시 작년 담당의 선생님이었는데 작년에 참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아있어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다. 근데 이 선생님 연차가 같은 재단의 다른 병원으로 로테이션 가야 하는 연차였다. 입원하기 전부터 그걸 알고 있었고, 입원하고 나서도 곧 가실 걸 알기에 마주칠 때마다 더 반갑게 인사하곤 했다.

 

 그 선생님이 떠나기 하루 전, 편지를 써 전해드렸다. 전날에도 아무런 감정적 동요가 없길래 ‘그렇게까지 좋아한 건 아니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그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이젠 내 담당의가 아니라 면담할 일도 없을 텐데, 나를 왜?’

 ‘아, 인사하려고 오는 거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선생님과 빈 병실에 단둘이 있었다. 예상에 한 치도 벗어남이 없는 말. 근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치료 계획 잘 세우고, 치료에 집중하라고 하는데 너무 속상했다. 떠난다는 게 실감 나서.

 “우리의 대화나 경험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거 정말 잘 알지만 그래도 너무 슬퍼요, 선생님.”

 “그럴 수 있죠. 그래도 계속 소식 듣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편지 마지막에 ‘안산으로 가도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적어놨는데 선생님이 그걸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걸까 싶어 울음은 더 커졌다. 대화를 마치고 빈 병실에 혼자 서 있는 나는 오열하듯 울었다.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왜 울음을 토해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건대, 나에겐 관계의 단절이 안 좋은 경험으로 쌓여 있어서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친구의 죽음, 엄마와 헤어진 이후 시작된 학대 등의 경험 등이 그 예시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는데 사람도 영역 취급을 한다고 한다. 비슷하게 나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 사람들이 떠나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도 내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을 것 같고, 그럼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 늘 생각은 이렇게 흘러갔다. 그러니 이별이 힘들 수밖에.

 내가 좋아했던 한 의대 실습생 선생님은 말했다. 내가 성동혁 시인의 작품 ‘12264456’을 읽어준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행성이 내게 멀어져 간 것은 재앙이다 / 네가 두고 간 것들을 나만 보게 되었다’ 이를 인용하며 한 행성이 내게 멀어져가면 가만히 있지 말고 멀어진 곳의 반대쪽으로 뛰라고 했다. 행성은 둥근 궤도를 도니까 언젠가 만나게 되어있다면서. 그러니 우리가 멀어지는 건 멀어지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반대편에서 다시 만나자고도.

 

 행성은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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