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설득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빠가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처음 입원했을 때만 해도 놀기 위해 입원한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던 분이었기에 전화 걸기가 무서웠지만 할아버지는 의외로 다정했다. 이번 입원에서는 나에 대해 걱정했다. 힘든 건 없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그 따스한 질문 하나하나에 목이 메어왔다.

 나를 걱정하는 할아버지에게 걱정 끼치고 싶진 않았지만, 나는 진정으로 이 병원에서 치료가 이뤄질 거라고 믿지 않았다. 병원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쳐서, 할아버지에게 모든 걸 터놓고 말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싸우다 못해 치료진과 환자가 싸운다는 것, 의사가 날 보러 온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것도. 그러자 할아버지는 내가 퇴원할 수 있게 아빠를 설득해보겠다 하셨다. 내 편이 아닐 줄 알았던 사람에게 받는 지원은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밥을 먹고는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늘 싸우기만 하고, 치료진은 24시간 나를 케어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네 상태를 24시간 케어해주는 사람? 한 사람의 몫을 포기하는 거잖아. 이기적이지 않아?”

 비수로 꽂히는 말 한마디, 한 마디.

 “나는 네가 뭐든 하면 좋겠어. 자해나 자살 빼고.”

 왜 비수를 꽂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왜 아프게 하고는 그 상처를 매만지려 하는 걸까. 쓸리는 아픔에 엉엉 울었다. 나는 단지 이런 다정함이 필요했을 뿐이다. 반수에 실패했다는 나에게 필요했던 말은 응원이었지 동생의 취업 사실이 아니었다. 그 말 한마디가 굴러서 여기까지 왔다. 근데 아빠는 왜 인제 와서 나를 보듬는 걸까. 울면서 아빠에게 서운했던 걸 다 말했다. 당신의 무심은 나에게 다정이 아니라 상처였다고. 관심이 필요한 순간에 당신은 늘 무심했노라며 울었다. 아빠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병원과 연락하겠다며 통화를 끊었다.

 

 왜 인제 와서 이러냐는 혼란스러움 속에서 분하고 울고 싶어서 안정실에 들어갔다. 간호사가 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 혼자 상처 내고 있었는데 혈압을 잴 팔을 보다가 걸렸다. 예쁜 몸에 왜 상처를 내냐는 질문에 대답 대신 ‘우리 아빠가 선생님만큼 다정하면 좋을 텐데….’라며 울었다. 아빠가 선생님만큼 다정했더라면 내게 다정한 남자에게 끌릴 일도 없었을 텐데. 내 주치의에게, 나를 잘 챙겨주던 아는 사람에게 끌렸던 건 전부 내가 아빠에게 바라던 모습을 그들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내가 측은해졌다. 공허함과 외로움이 나를 덮친다. 그런 내 옆을 애인이, 엄마가, 반려 고양이가, 친구들이 스친다. 더 깊은 우울로 빠진다. 우울함에 중력이 있다면 저 깊은 곳으로 들어가 영영 깨어나지 않기를.

 

 아빠와 병원의 통화가 끝난 건지 간호사가 내게 와서 말한다. 짐 싸라고. 3일 만에 퇴원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의사의 얼굴을 병동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퇴원하면서 아빠는 외래 얌전히 잘 가고 그때까지 사고 치지 말라고 말했고, 평소에 같이 마주 보며 담배 피던 아빠가 홀로 담배를 피웠다. 너는 지금 그러고 싶냐면서. 아빠는 아빠대로 심란했으리라 생각한다.

 나중의 일이지만, 아빠는 몰라서 그랬다고 했다. 내가 처음 입원했던 병원이랑 2차 병원이랑 둘 다 병원이니 시설도, 대처도 같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몰라서 그랬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아빠의 말에서 나는 다시 한번 울었다. 당장 내가 죽을까 봐 무서워서 그랬다고. ‘그러면 그렇게 말하면 안 됐지….’라는 말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아빠를 다독였다. 내가 죽을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 앞에서 아픈 당사자가 할 수 있는 건 몇 안 된다. 가시에 찔린 건 나면서, 내가 가시가 된 것 같아 주변을 바라봐야 했다. 가시에 찔려 아파서 주변을 챙길 여력도 없던 나는 그래야 했다. 다정하지 않던 사람들이 다정하게 변한 것은 분명 나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도 주변을 보고 바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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