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간 2차 병원을 지금도 미워한다. 원해서 입원한 것도 아니어서 모든 게 싫었던 것도 크겠지만, 제일 충격이었던 건 사람들의 태도였다. 입원에 필요한 물품을 동생이 가져온 날이었다. 거기엔 간식도 있었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내게 몰려들었다.

 “제가 이거 들어드릴게요.”

 혼자 들 수 있다며 한사코 사양하는 내 손에서 짐을 들고는 억지로 내 병실까지 짐을 옮겼다. 그러곤 하는 말이 겨우 초코파이 달라는 말이었다.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기꺼이 하곤 당당히 요구하는 태도에 기가 찼다. 근데 더 웃긴 건 차라리 이게 양반이었다는 거다.

 “어, 간식 왔네? 그럼 갚아야지.”

 내게 새로 왔냐며 간식을 줬던 사람이 한 말이었다. 그때 그저 호의인 줄 알았는데 갚아야 한다는 문화가 있을 줄은 몰랐다. 간식 하나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치사해질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내가 다니던 병원에서는 펜을 대여해줬다. 이 병동에선 위험한 물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이는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지급해줬는데 이 병원은 안 그랬다. 보호사님께 당연하다는 듯 종이와 펜을 요구했는데 사야 한다는 답이 돌아와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게시판에는 매점에서 판매하는 용품과 그 가격이 적혀있었다. ‘뭐 이런 병원이 다 있어?’ 하며 여기의 모든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싸운다. 갖가지 이유로. 그리고 그 싸움을 보호사와 간호사는 방관한다. 병동의 상황은 늘 예측불가능하게 흐른다. 언제는 망상증 환자가 환청에 시달려 혼잣말로 욕하는 걸 듣고는 자신에게 시비를 건 것이냐며 싸운 적도 있었다. 또 언제는 밖에서 큰 소리가 났다. 밖을 보니 보호사랑 환자가 싸우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멀어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둘은 큰 소리를 내며 다툰 것이 분명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나는 그 장면이 심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다니던 병원에서는 치료진이 큰 소리 내는 경우가 없었다. 환자에게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환자들도 웬만하면 소리 지르지 않았다. 물론 내가 의료진은 아니기에 병원에서 그런 일이 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입원 병동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장기 입원 환자가 많았다. 3개월은 기본이요 6개월 넘게 입원한 환자도 있었다. 당장 이 병원을 퇴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락처를 적어올 수 없었으니 내가 걸 수 있는 번호는 가족과 애인밖에 없었다. 엄마와 애인과 전화하며 울었다. 이곳은 너무 무섭고 아빠는 너무 무책임했다. 내가 여기서 퇴원하기 위해선 아빠의 동의가 필요했으므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병원 옮겨 줘. 여긴 사람들이 싸우고 치료진이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아.”

 내 말을 아빠는 ‘떼쓰는 것’으로 일갈했다. 정신병 걸린 주제에 의사 말이나 따를 것이지 어떻게 감히 판단하냐고 했다. 내가 지금 요양 온 거냐고. 요양을 떠나 의사는 한 번도 나를 보러 오지 않았고, 그러므로 치료적 조치가 이뤄진 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너는 내가 응급실에 간 것에 대해서 고맙거나 미안하지도 않니?”

 “술 먹었냐고 물어본 것도 다 계산해서 날 떠본 말이잖아.”

 기가 찼다. 아빠는 진정 내가 살아있길 바라서 입원시킨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내가 죽어도 슬퍼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슬퍼한다면 내 미국 국적으로 초청비자를 받지 못한 게 아까워서일 것이다. 아빠와 대화를 끊었다. 그렇게 입원 2일 차의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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